
- 생몰년
- 1870년 5월 9일 ~ 1937년 3월 20일
- 출신
- 채널 제도 저지섬 그루빌
- 선수 실적
- 디 오픈 6승(최다 기록), US 오픈 1승(1900년)
-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 1974년
해리 바든(Harry Vardon)은 1870년 5월 9일 채널 제도 저지섬의 그루빌에서 태어난 프로골퍼이자 골프장 설계자입니다. 소년 시절 Royal Jersey에서 캐디를 하며 골프를 익혔고, 1890년에 잉글랜드 요크셔의 Studley Royal Golf Club 그린키퍼가 되었습니다. 그 뒤 Bury Golf Club의 프로를 거쳐 1896년에 Ganton Golf Club의 프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같은 1896년에 디 오픈에서 처음 우승했고, 1898년과 1899년, 1903년, 1911년, 1914년을 더해 모두 여섯 차례 정상에 올랐습니다. 디 오픈 6승은 지금도 깨지지 않은 최다 기록입니다.
1900년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90경기가 넘는 시합에 나섰고, 그 마무리로 US 오픈에서 우승했습니다. 1913년 US 오픈에서는 스무 살의 프랜시스 위멧에게 연장전에서 져 2위에 올랐습니다. 쉰 살에 출전한 1920년 US 오픈에서도 공동 2위에 들었습니다. 프로로서 거둔 우승은 48회입니다. 제임스 브레이드, J. H. 테일러와 더불어 ‘그레이트 트라이엄비레이트(Great Triumvirate, 3거두)’로 불리며 1890년대 중반부터 1910년대 중반까지 골프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두 손의 손가락을 겹쳐 쥐는 오버래핑 그립을 널리 퍼뜨린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쥐는 법은 지금도 ‘바든 그립’이라고 불립니다. 1903년에 결핵을 앓은 뒤로는 오랫동안 건강에 시달렸습니다.
선수로 활약하는 한편으로 영국 곳곳의 코스를 설계했습니다. 잉글랜드의 Woodhall Spa Golf Club은 18홀 코스의 설계를 바든에게 맡겼고, 바든은 1903년 1월에 현지를 찾았습니다. 이 코스는 훗날 해리 콜트와 스태퍼드 비어 호치킨이 손을 대어 지금의 Hotchkin Course가 되었습니다. 1908년 7월에는 잉글랜드의 Little Aston Golf Club이 바든에게 코스 조성을 의뢰했고, 그 뒤 콜트가 벙커 등을 고쳤습니다. 이 밖에 웨일스의 Llandrindod Wells Golf Club과 잉글랜드의 Radcliffe-on-Trent Golf Club도 바든의 설계로 전해집니다.
1900년대 초에 런던 북부의 South Herts Golf Club으로 옮겨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클럽의 프로를 맡았습니다. 1937년 3월 20일 런던 웨트스톤에서 예순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PGA of America는 PGA 투어에서 한 해 평균 타수가 가장 좋은 선수에게 주는 상에 ‘바든 트로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974년에는 최초의 헌액 멤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현재 GoGolf에서는 해리 바든이 설계한 코스를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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